좋은시 좋은글

이브의 사과(謝過)

아꿍할미 2006. 3. 23. 09:01
      이브의 사과(謝過) / 배찬희


      몰랐습니다, 정말
      내 땅의 사과
      이리 달고 맛있는데
      억 년 습관으로
      내 몸에 흐르는 피
      때문이라, 말하지 않으렵니다.

      단 한 번 쳐다 본, 정원
      아직도 뱀들이 내 발뒤꿈치 물어뜯을 줄
      몰랐습니다
      뒤꿈치 살짝 들고 걸어가면
      아무도 상처입지 않을 거라
      믿었습니다.

      갈 잎 아래 숨죽인 진흙은
      생각도 못했습니다.
      진흙 길 걸어가며
      흔적 남기지 않으려
      애쓰는 내 모습, 차마
      부끄러워 말하지 않으렵니다.

      그대 허리뼈 휘어지고
      염도 높은 땀방울 숭숭 맺히게 하는, 사람
      바로 나였음을
     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
      에덴을 절룩거리며 함께 걸어나온 사람도
      바로 나였음을.....

      산고의 고통으로 신음하면서도
      아귀가 딱 맞는, 그대
      튼튼한 갈비 뼈 한 쪽이기에
     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고
      누구에게 피 토하며
      사과해야 하는지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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